캐리오디오 SLI-80 HS
달콤하고 선명한 KT88 인티앰프의 유혹
캐리 오디오(Cary Audio)의 인티앰프 SLI-80 HS는 미국 진공관 앰프의 DNA가 고스란히 살아 있다.
블랙 파우더 코팅을 한 키 작은 섀시, 그 위에 사선으로 배치한 출력 트랜스, 그 앞에 위치한 두툼한 KT88까지 더 이상 빼고 보탤 것이 없는 진공관 인티앰프의 원형이다.
역사도 오래 됐다.
오리지널이 1998년에 나왔고, 시그니처 모델이 2001년에, 이번 HS 모델이 2019년에 나왔다.
20년 이상을 롱런해 온 모델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다.
1989년에 설립된 캐리 오디오를 유명케 한 딱 3개의 진공관 앰프를 꼽으라면 CAD-300(1989년), CAD-805(1992년), 그리고 SLI-80(1998년)이다.
앞의 CAD 2개 모델은 모노블록 파워앰프, 뒤의 SLI 모델은 인티앰프다.
300B 싱글 구동의 CAD-300은 CAD-300SEI 인티앰프에 바통을 넘기며 단종됐지만, 845 싱글 구동의 CAD-805는 지금도 RS 버전으로 생산되고 있다.
빔관 KT88을 푸시풀 구동하는 SLI-80 인티앰프는 1998년 처음 등장한 이래 2차례 마이너 체인지를 했다.
처음 나왔을 때는 울트라 리니어(UL) 모드로 80W, 트라이오드(Triode) 모드로 50W를 냈다.
그러다 SLI-80 시그니처 모델이 나오면서 트라이오드 모드 출력이 40W로 줄어든 대신, 오리지널에는 없던 헤드폰 앰프와 4/8옴 스위치, 리모컨을 추가했다.
2019년에 출시된 SLI-80 HS는 정류 방식을 진공관에서 솔리드로 바꿨다.
SLI-80 HS는 기본적으로 출력관에 KT88을 채널당 2개씩 써서 울트라 리니어 모드 시 80W, 트라이오드 모드 시 40W를 내는 클래스 AB 인티앰프. 초단 및 전압 증폭관은 쌍3극관 6922, 위상반전 및 드라이브관은 쌍3극관 6SN7. 각각 한 채널에 1개씩 투입됐다.
이처럼 채널당 6922 1개 - 6SN7 1개 - KT88 2개로 이어지는 구성은 오리지널 모델 때부터 계속됐다.
이전 시그니처 모델과 가장 다른 점은 정류 방식의 변화. 시그니처 버전에서는 5U4 진공관을 채널당 1개씩 썼지만 HS 버전이 되면서 솔리드 방식으로 바뀌었다.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것은 측면에 붙은 우드 마감인데, 이는 모델명에 붙은 'HS'(Heritage Series)와 관련이 있다.
1946년 설립된 미국 클립시(Klipsch)가 여러 오디오 쇼에서 SLI-80 인티앰프와 자사 최상위 헤리티지 스피커들을 매칭해 왔고, 이를 기념해 이번 콜라보 모델 SLI-80 HS가 나왔기 때문. SLI-80 HS 우드 마감을 월넛, 체리, 블랙 애시 중에서 고를 수 있도록 한 것도 클립시혼(Klipschorn), 라 스칼라(La Scala) 같은 클립시 헤리티지 스피커들과 시각적 매칭을 위해서다.
SLI-80 HS 실물을 보니 사선 방향으로 배치한 출력 트랜스가 눈길을 끈다. 가운데는 EI 전원 트랜스, 뒤에 한 개씩 보이는 것은 평활용 커패시터. 평활 커패시터를 섀시 상판에 노출시키는 것 역시 캐리오디오디자인의 시그니처 중 하나다.
KT88 양옆으로는 출력관 결선 방식을 울트라 리니어와 트라이오드 중에서 고를 수 있는 토글스위치가 1개씩 달렸다.
뒤에 보이는 잭(바이어스 미터 잭)과 포텐셔미터는 출력관 바이어스 조절용이다.
전면 패널에는 건드릴 수 있는 게 제법 많다.
왼쪽부터 전원 온 오프 토글스위치, 입력 선택 노브(Line 1, 2, 3), 볼륨 컨트롤 노브, 좌우 밸런스 노브, 리모컨용 IR 센서, 출력 선택 토글스위치(헤드폰/스피커), 6.35m 헤드폰 출력 잭 순이다.
후면은 가운데 전원 인렛 단자를 사이에 두고 좌우가 완벽히 대칭을 이루는 모습인데, 스피커 케이블 커넥터와 8옴/4옴 선택 토글스위치, 아날로그 입력단자(RCA) 3계통이 마련됐다.
액티브 서브우퍼 출력 단자도 1계통이 있다. 시청에는 브라이스턴의 네트워크 DAC BDA-3.14와 소너스파베르의 올림피카 노바 III 스피커를 동원해 주로 룬(Roon)으로 코부즈 스트리밍 음원을 들었다.
야신타의 ‘Moon River’를 들어보니, 트라이오드 모드를 선택할 경우 클래스 A 증폭 구간이 넓다는 캐리오디오의 주장이 비로소 납득이 갔다.
소리가 진하고 잔향음이 풍성하며 소릿결이 촉촉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맛 때문에 굳이 빔관이나 5극관을 3결 접속하는 것이다.
하지만 SLI-80 HS의 가장 두드러진 사운드 특징은 입자감이 곱고 달콤하며 부드럽다는 것.
KT88도 캐리오디오에서 푸시풀로 구동하고 트라이오드 모드로 작동시키면 이런 시럽 같은 음이 나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이에 비해 커티스 풀러의 ‘Oscalypso’를 울트라 리니어 모드로 들어보면 무대의 스케일이 커지고 각 악기의 음상이 보다 정확히 맺힌다.
트롬본은 더욱 호방해졌고 드럼의 림 플레이는 보다 선명해졌다.
과연 20년 이상을 롱런해온 인기 모델의 최신작다운 납득이 되는 음과 무대였다.
문의처:(주)사운드솔루션 02)2168-4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