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의 / 전당 #006
SPEAKER SYSTEM
JBL D44000 Paragon 1957년 발매
★ State of The Art 1978
JBL의 두 번째 ‘프로젝트 스피커’
불후의 명작, 오디오 컴포넌트의 금자탑 ---
착실하게 울리는 패러건의 음을 직접 체험한 사람은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그저 음이 나오는 초고급 가구를 드넓은 거실에 놓겠다는 생각으로 사용하려 한다면 상관없지만, 좋은 음으로 울리려 한다면 이것만큼 사용자의 오디오적 기량과 음악적 센스를 추궁하는 스피커는 없을 것이다.
조합하는 기기를 음미하고 심혈을 기울여 조정하면 만곡된 확산 패널의 중앙에 초현대적이라고 할 수 있는 리얼한 음상이 둥실 떠오르지만…. 나에게 충격을 주었던 것은 오디오 평론가 이와사키 치아키 선생의 패러건. 1976년의 일이다.
스테레오사운드 제38호의 특집 기사는 오디오 평론가의 리스닝 룸을 방문하는 것이었는데, 그 기사의 취재 때에 접했던 패러건은 정수리를 후려치는 듯한 대음량임에도 불구하고 밸런스가 정말 좋은 음으로 울려서 경악하였다.
이와사키 선생이 대음량 재생을 좋아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야기로 들었던 것을 뛰어넘는 대음량이었다. 그리운 추억이다.
리포터 역을 맡았던 이노우에 타쿠야 선생은 이와사키 선생의 패러건이 다른 개체와 완전히 다른 음을 낸다고 하였다.
능숙하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한 375 드라이버와 075 트위터가 이 정도로 온화하고 윤기 있게 울리는 예는 그다지 없다며 감탄하셨던 것이다.
특수한 구조 때문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저음이 동굴 안에서 울리는 것 같은 음이 되기 십상이지만, 이와사키 선생의 패러건은 어느 정도 음량을 올려도 히스테릭하게 울부짖지 않았으며 저음이 제멋대로 울려 퍼지는 일도 없었다.
이와사키 선생은 스테레오사운드 제41호(1976년 12월 발매)의 기사에서 ‘일반적인 사용법으로는 패러건의 진가를 발휘시킬 수 없다.
혼 냄새가 나는 음이라고 느끼는 것은 구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라고 단언하였다.
그리고 ‘우수한 스피커일수록 본연의 음을 이끌어 내는 것이 힘들다고 자주 이야기된다.
그런 점으로 보면 패러건은 현존하는 스피커 시스템 중 가장 다루기 힘든 모델이다’라고 하였는데, 이와사키 선생의 패러건처럼 훌륭하게 구사되는 예와는 다시 만나지 못했다.
음향 기술자와 디자이너의 독창적인 아이디어에 의해 완성
패러건이 발표된 것은 1957년(발매는 11월부터. 당시의 정식 명칭은 The JBL-Ranger Paragon Integrated Stereophonic Reproductor). LP 레코드가 스테레오화 되었던 것이 1958년이므로 패러건은 ‘스테레오’와 함께 걷기 시작한 셈이다.
스테레오 음장의 청취 범위를 넓히기 위해 좌우 스피커를 일체화하고 크게 만곡된 확산 패널을 중앙에 설치, 중음역을 담당하는 혼형 유닛의 방사 축이 확산 패널 쪽을 향하게 한 아이디어는 음향 기술자인 리처드 레인저(Richard Ranger)가 낸 것이었다.
그리고 이 기본 설계를 실현 가능한 제품의 형태로 정리해 낸 것은 아놀드 울프(Arnold Wolf)가 지닌 공업 디자이너로서의 역량이다.
중음역 혼을 지지하는 방법은 울프의 아이디어라고 알려져 있는데, 대체 어떻게 그런 발상을 떠올릴 수 있었을까.
울프가 천재라고 칭해지는 이유이다. 패러건은 하츠필드(1954년 발표)의 뒤를 이어 JBL의 두 번째 ‘프로젝트 스피커’로 탄생하였다.
개발을 추진했던 것은 사장 빌 토머스(Bill Thomas는 약칭. 본명은 William H. Thomas)와 설계자 리처드 레인저, 그리고 디자이너 아놀드 울프(빌 토머스 이후, JBL의 3대째 사장으로 취임한다). 이들 세 사람이 함께한 기적의 컬래버레이션에 의해 불후의 명작, 오디오 컴포넌트의 금자탑이 완성되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1983년에 생산 종료가 결정되었다. 1988년, 최후의 한 대가 일본에서 판매되며 30년에 달하는 패러건의 생애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