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칸디나비아 디자인,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의 그것이 이태리 디자인을 누르고 세계를 점령할 수 있을까? 실용적이며 기능적인 요소를 추구하는 디자인이 단순하고 간결해 보이기는 하지만 그 속에는 철저한 분석과 수많은 고민의 흔적이 담겨있다. ‘절제미’를 강조하면서 동시에 개성을 강조하며 소비자 입맛에 맞춰가는 스칸디나비아의 디자인은 앞으로도 더 발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하지만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은 흔히 생각되는 가구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노키아, 사브, 뱅앤울릅슨 그리고 그리폰이 있다. 1985년 설립되어 그리 길지 않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그리폰은 덴마크를 대표하는 하이엔드 오디오 메이커로 급부상한 스칸디나비아의 결정체이다.
현재 최고의 인티앰프라 불리우는 그리폰 디아블로의 형제기인 아틸라(Atilla)가 금번 리뷰의 주인공이다. 디아블로가 울려주어야 할 물리적 공간보다 작은 공간의 소유자, 그리고 보다 작은 스피커 운용자, 그들의 요청에 의해서 아틸라가 탄생하게 되었다. 하지만 디아블로의 성능을 희생하여 다운 그레이드 한 것이 아니라 퍼포먼스를 유지하며 작은 몸체에 담은 다운 사이즈 앰프이다. 이제 그 이유를 살펴보자.
회로 구성은 기본적으로 트루 듀얼 모노럴 구성 방식을 채택하여 채널간 분리도를 극대화 했고 입력단에서 출력단에 이르기까지 완전히 분리하여 채널간 상호 간섭을 제거하여 스테레오 이미지를 향상 시킨다. 또한 네거티브 피드백을 제로화 하여 회로 상호간의 생길 수 있는 변조 노이즈를 제거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었다.
디아블로에서도 아주 특기할 만한 점은 새로 개발한 볼륨 컨트롤이었다. 새로운 볼륨 제어 기술은 마이컴을 통해 릴레이와 레지스터 스위치를 조작, 고정밀 메탈 레지스터의 다양한 조합을 만들어 저항 값을 바꾸는 방법이다. 기존 아날로그 가변 저항들이 갖는 접점 문제나 오차 그리고 음의 열화와 같은 문제로부터 완벽히 벗어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볼륨을 올리거나 줄이는 동안 아주 미세하지만 릴레이의 스위칭에서 오는 독특한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는 어떤 회로나 어떤 환경에서도 동일한 스펙을 보장해주는 고정밀 레지스터들의 회로로 구성된 자체 개발 볼륨 컨트롤이 대단히 정확한 신호처리를 통해 극도로 투명한 불륨 어테뉴에이터의 역할을 수행하는 기분 좋은 소리이다.
회로적으로는 내부의 와이어링을 최소화 하고 시그널 패스를 최단으로 설계하여 신호 손실을 최소화 하였다. 출력은 8옴의 100w로 디아블로의 250w에 비해서는 절반 이하로 줄었으나 사용된 전원부는 듀얼 모노의 Holmgren 토로이덜 트랜스포머를 시작으로 채널당 60,000uF의 오디오용 고급 콘덴서로 설계되어 사실상 전원부의 능력은 디아블로와 거의 같은 수준이다. 즉, 출력 수치는 디아블로보다 적지만 실제 스피커의 구동 능력은 디아블로에 버금가는 차고 넘치는 수준이다.
그리폰은 앰프의 전원부에 소수의 대용량 콘덴서보다는 저용량 콘덴서를 여러 개 사용하는 일종의 캐패시터 뱅크 구성의 설계를 추구해왔다. 아틸라도 이런 설계를 고스란히 물려 받아, 가능한 한 전원부의 저항성분을 최대한 낮춰줌으로써 전체적인 앰프의 임피던스를 낮추어 주는 성과를 가져온다.
중요한 증폭 회로 역시 디아블로와 마찬가지이다. 입력 스테이지에서 드라이버에 이르는 전압 증폭 회로는 J-FET와 산켄의 바이폴라 트랜지스터를 혼용한 설계이다. 특히 입력단은 초저노이즈의 J-FET로 신호의 순도를 높이고자 했다. 이후 최종 출력단은 A/B급 설계로 산켄의 대출력용 바이폴라 트랜지스터가 담당한다. 물론 이들 트랜지스터들은 모두 자체적으러 선별하여 스펙이 높은 부품을 투입했다.
이번에는 외관이다. 기기의 전체적인 모습은 디아블로의 아래, 위 부분을 제거하고 디스플레이부 만큼만 줄인 모습인데, 누가 보아도 한 눈에 그리폰 제품임을 알 수 있는 디자인 적인 흐름이 유지 되었다. 2줄의 50글자를 보여 줄 수 있는 전면은 VFD를 채용하여 시인성을 향상 시켰다.
인터페이스는 터치센서를 도입하였는데 아크릴 위에서 일어나는 표면 마찰을 인식하는 방식이다. 이는 기존 전자 제품들처럼 버튼을 숨겨 놓아 표면을 눌러주어야 인식하는 방식들과 달리 피부가 버튼 위치의 아크릴에 닿는 것만으로 움직임이 인식되어 컨트롤들이 동작되는 방식이다. 실제로 작동해 보면 특유의 조작 편의성과 동작음으로 인하여 단순한 기계가 아닌 고급 서버를 운용하는 느낌을 받는다. 또 하나 고마워해야 할 점은 내부 플래시 메모리는 PC를 통하여 언제든지 업그레이드가 가능하여 작은 개선마다 H/W 또는 F/W를 교체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입력은 RCA 4개과 XLR 1개이며 단자는 각각 동사 특주품과 스위스 뉴트릭 단자를 채용하여 접속력을 확보하고 음질개선의 도움을 준다. 스피커 케이블 연결 단자는 금도금이 된 특주단자를 사용하였는데 디아블로의 스피커 터미널 보다 훨씬 만듦새가 뛰어나고 특히 힘을 주는 단자머리 부위를 크고 튼튼하게 제작하여 강하게 조일 수 있다. 실제로 요즘 판매되는 어느 수준 이상의 스피커 케이블들은 직선으로 돌아가려는 고유 탄성계수 K가 매우 커서 앰프 및 스피커 단자에서 이탈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아틸라는 그러한 사소한 걱정으로부터 해방 시켜 준다.
Atilla는 어느 모로 보나 막대한 물량을 투입한 수준급 앰프이다. 물론 사용된 부품 수와 음질이 정비례한다고 볼 수는 없으나, 몇 개 안 되는 부품과 현란한 마케팅으로 중무장한 제품 보다 본전 생각이 덜하고 속았다는 느낌을 받지 않는 점에서는 인지상정일 것이다. 마치 스타트랙의 비행선과 같은 모습의 리모컨은 그립감이 뛰어나고 버튼이 고무로 제작되어 터치감이 좋아 아틸라의 품격을 더해준다.
사운드 퀄리티
아틸라 사운드의 특징은 고급스러운 차분함이다. 농도 짙으며 색채감이 풍부한 사운드와 음악성. 현대성 및 와이드 레인지와 같은 극단적인 개성을 위해 음색이 손상되지 않았다. 펼쳐지는 음장 공간이 넓고 깊으며 투명하다. 음촉을 다듬어 놓아 자극적이지 않고 음악 속에 몰입할 수 있게 해준다. 녹음에 담긴 모든 개체들의 풍부한 하모닉스로 악기와 보컬들의 고유 음색을 또렷이 살려내어 음악에 담긴 열기를 고스란히 전달해 준다. 세밀하며 또렷한 음의 임자감은 다양한 악기들의 소리들 하나하나를 생생하게 표현하며 보컬의 표정 변화나 공간의 잔향 및 울림 같은 녹음에 뒤따르는 나머지 요소들은 그와 함께 따라오는 아틸라의 또 다른 전리품이다. 무대 전후의 공간감과 깊이감은 매우 입체적이며 음량을 크게 해도 음의 초점들이 굵어지거나 딱딱하게 뭉치는 경우가 없다. 투명한 고역과 질감과 밀도감을 바탕으로 한 중역, 디테일 좋은 저역대와 딥베이스까지 내려가는 실력은 일품이다.
David oistrakh가 연주한 브루흐 <스코티시 판타지>는 로맨틱하고 감상적이며 기술적으로 현란한 곡이다. 그의 절묘한 보잉의 디테일과 다이내믹스를 사실적으로 표현하며 백그라운드 오케스트레이션의 서정성이 감각적으로 묘사한다. 미샤 마이스키 연주 하이든 <첼로 협주곡>에서 현악기의 질감 표현은 해상도가 높으면서도 온도감이 높고 하모닉스가 살아나 매우 사실적인 연주로 들려준다. 백건우가 연주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에서 피아노는 그의 심오한 감정과 긴장된 힘으로 넘쳐난다. 탄탄하고 흔들림 없는 중역은 좀 더 따스한 표현력이 뛰어난 앰프들만큼 도톰하거나 진공관 같은 온기 있는 사운드를 들려주지는 않지만, 흔들림 없는 중역의 안정감 덕분에 나머지 대역들은 고역과 저역이 맘껏 뻗고 깊이 파 내려가도 전체음색이 바뀌거나 특정 대역이 두드러지는 음의 불안정한 재생이 전혀 생기지 않아 인티앰프의 실력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재즈 재생 역시 만족스럽다. 빌 에반스 트리오의 <왈츠 포 데비>는 오래된 녹음에 꾸밈음이 많은 특유의 연주의 스타일로 재생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아틸라는 터치감을 잘 살려주고 피아노의 잔향이 매력적이며 베이스의 질감 및 음색을 거침없이 표현해 낸다. 보컬 재생을 위해 들어본 캐롤 키드 녹음에서도 그녀의 목소리는 매우 원숙하고 정확하게 표현되며 목소리의 힘이 실려 있다. 무대의 크기가 다른 앰프 보다 넓어져 있으며 그녀가 정확하게 위치한다. 무대와 같이 가수의 입이 커지는 중급앰프와는 차원이 다르다.
트란실바니아를 본거로 하여 주변의 게르만 부족과 동 고트족을 굴복시켜 대제국을 건설한 훈족의 왕 아틸라. 동로마를 위협하여 조공을 바치도록 하기는 성공하였으나 서로마 연합 동맹국과의 일전에서 패하여 쓸쓸한 최후를 맞은 그를 제품명으로 사용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하이엔드 오디오로 전 세계를 제패하고 싶은 열망을 숨기고 싶지 않은 자신감의 표출일 수도 있겠다. 이미 그리폰은 그런 야망을 어느 정도 이루어냈다. 하이엔드에서의 화려한 성공에 이은 이 인티앰프에서도 어느 하나 완벽함을 버리지 않는 그들의 자세가 느껴진다.
물론 모든 면에서 부족함이 없고 어느 하나 아쉬움이 없는 높은 음질은 분명 만인에게 추천할 대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출력 스펙 수치는 디아블로의 절반인데 반해 가격은 디아블로에 육박하는 구동력에 맞춰져 있다. 다소 저렴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인티 앰프로서는 최고가를 다툰다. 그런 점에서 이 앰프를 선뜻 선택할 수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품격이 느껴지는 음질과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조화로 마지막으로 다시 인티앰프로 돌아가야 할 상황이 된다면(물론 경제적으로도 가능해야겠지만) 꼭 Atilla가 나의 마지막 선택이 될 것이다. HFC - 최윤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