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INIUS HAUTONGA STEREO INTEGRATED AMPLIFIER
신대륙에서 만든 기적 플리니우스의 하우통가
글 / 이종학 (Johnny Lee)
끔 신제품을 접하다 보면 도저히 모델명에서 뜻을 알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있다.이번만 해도 그렇다. 하우통가(Hautonga)? 대체 무슨 뜻인가 싶어서 열심히 구글을 찾아봤더니, 뉴질랜드의 웰링턴에 있는 거리 이름이라고 한다. 아마도 마오리족의 언어에서 가져온 듯한데, 정확히 어떤 뜻인지는 알 길이 없다. 어쨌든 본 기를 만든 플리니우스는 뉴질랜드 출신이다. 더 디테일하게 파고들면 크라이스트처치에 위치하고 있다. 만일 호주쪽으로 여행을 간다면 꼭 뉴질랜드를 방문하고 싶은데, 그 이유는 바로 플리니우스 때문이다.
사실 뉴질랜드라는 곳은, 일종의 지상 낙원으로 치부되지만, 덕분에 공업 제품에 대한 인지도는 미미한 편이다. 그런 환경에서 이런 세계적인 브랜드가 나왔다는 것은, 역으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고 본다. 가장 큰 특징은, 내용물을 완벽히 보호하는 단단한 섀시와 튼실한 트랜스포머, 간략한 신호 경로, 고급 부품의 투입 등, 앰프와 CDP의 기본을 정직하게 지켜온 정책이라 하겠다. 덕분에 플리니우스의 제품들은 우리나라에서도 쏠쏠하게 판매되고 있고 특히 중고 마켓에서 상당한 경쟁력을 갖고 있다.
한동안 플리니우스의 제품을 리뷰한 적이 있는데, 볼수록 잘 만들었다는 생각을 했다. 출력과 무관한 엄청난 스피커 구동력을 바탕으로, 풍부한 음악성과 치밀한 해상력 등은, 굳이 하이엔드를 지향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충실한 내용을 들려준다. 이번에 만난 것은 이례적으로 200W의 출력을 자랑하는 만큼, 동사의 인티 앰프 중 플래그쉽이라 불러도 무방할 것 같다. 일단 외관을 보면, 상당히 심플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이전에는 볼륨 버튼 외에 셀렉터 단자까지 냈지만, 여기선 다 생략, 프런트 패널 상단에 작은버튼을 쭉 배열해서 누르도록 했고, 오로지 큼지막한 볼륨 노브만 보일 뿐이다. 참 과감한 레이 아웃이라 보인다. 또 프런트 패널은 양옆으로 길게 펼쳐지다가 둥그렇게 말아서 뒤로 빠지며, 그 끝에 손잡이 형태로 마무리된다. 그 두께와 단단함이 상당해서, 주먹으로 쳐도 꺼덕이 없다.
바로 그 사이에 내용물이 가지런히 자리잡은 형태다. 내부를 보면 커다란 트랜스포머가 전원부의 튼실함을 더해주고, 입력단에서 출력단으로 이어지는 회로도가 기판 위에 아름답게 배열되어 있다. 뭐 하나 흠 잡을 데가 없는 완전무결한 구성이다. 양편에는 출력석이 삽입된 방열핀이 배치되어, 발열을 돕고 있다. 참고로 본 기는 110도 이상으로 온도가 올라가면 자동적으로 꺼진다. 사용상 그럴 일은 없겠지만, 특별한 전기 환경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사전에 제거하겠다는 복안이다. 입력단을 보면, 포노, CD 그리고 라인단 4개로 구성되어 있다. CD는 RCA와 XLR을 토글 스위치로 선택할 수 있고, 포노단의 게인 역시 조절 가능하다. 이를 위해선 윗판을 열고, 내부의 접속 관계를 바꾸면 된다. 기본으로는 하이 게인이 되어 있지만, 로우 게인으로 만든 다음, 승압 트랜스 등을 이용해서 MC 카트리지를 즐길 수 있다. 어쨌든 포노단을 제공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본 기의 가치는 상당하다 하겠다. 왜냐하면 플리니우스가 제작한 정식 포노 앰프의 성능이 꽤 뛰어나기 때문이다. 그런 노하우가 바탕이 되었으리라 짐작해본다.
한편 HT 바이패스라는 입력단도 별도로 있는데, 이는 홈 씨어터와 연계할 때 상당히 유리하다. 그 경우, 본 기의 볼륨단은 제외되고 오로지 홈 씨어터쪽의 AVR에서 작동시키는 볼륨단을 따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프리 아웃단이 있어서 별도의 파워 앰프를 달 수 있다는 점이나, 바이 와이어링이 가능한 두 세트의 스피커 터미널 제공 등, 꼼꼼하게 사용자 중심으로 설게한 점은 큰 덕목으로 다가온다.
본 기의 시청을 위해 필립스의 LHH 700 CDP와 D4A 사운드의 특주 스피커를 동원했다. 참고로 스피커는 혼 타입이라 상당히 민감해서 본 기의 성능을 측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끈 것은, 단단한 골격이다. 음악의 주가 되는 악기군들이 흐트러짐 없이 배치된 상황에서 디테일한 부분을 보충하는 식이다. 이를 테면 얀센이 연주하는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보자. 중심이 되는 바이올린의 음이 확연히 부각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그 주위를 오케스트라가 감싼다. 이들이 서로 악상을 주고 받으며 내닫는 과정이 상당히 일목요연하다.음악성이라는 면에서도 합격점을 줄 만한 것이, 원곡이 가진 슬픔이나 노스탤직한 기분을 잘 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자칫 기교 중심으로 치닫을 수 있는 연주지만, 그 배후에 흐르는 묘한 감성을 일체 놓치는 법이 없다. 그 점에서 30년 이상 앰프를 만들어온 플리니우스의 내공이 잘 드러난다고 하겠다.저역의 구동력 또한 지적할 만하다. 스피커의 감도가 높아서 자연스럽게 저역이 쉽게 나올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은 양의 이야기고, 질적인 부분은 또 다르다. 그 점에서 사라 본이 부른 <Slow Hot Wind>를 들으면, 투박하지만 정감 있게 다가오는 퍼커션과 베이스 라인의 부각은 특필할 만하다. 녹음 연대가 워낙 오래 되어서 다소 거친 맛도 있는데, 이를 너무 말끔하게 처리하지 않는 점도 마음에 든다. 특히, 기교가 빼어난 사라 본인지라, 어떤 부분에선 좀 과시하는 면도 없지 않은데, 이를 너무 드러내지 않고 음악적으로 말쑥하게 마무리지은 부분도 칭찬할 만다.
그럼 록은 어떨까? 그래서 작년에 타계한 천재 기타리스트 개리 무어의 <Parisienne Walkway>를 걸어봤다. 라이브 특유의 함성이나 아우성을 배경으로, 처절하게 울부짖는 기타 솔로가 나오는데, 너무 과하지 않다. 기본적으로 해비 메탈에 강한 기타리스트라 어떤
부분은 속주와 핑거링으로 때우는데, 이 부분이 스무스하게 처리된다. 애호가에 따라선 보다 강렬한 음을 원할 수도 있겠지만, 그럴 경우 클래식이나 여성 보컬에서 잃는 것이 많기에 이 정도 튜닝이 적합하지 않나 싶다. 당연히 드럼이나 베이스의 저역도 양호하고, 배후를 감싸는 올갠의 음울한 사운드는 이 곡이 가진 멜랑콜리한 감각을 한층 증폭시킨다. 만일 시청중이라는 사실을 잊었다면 눈물이 흘러 나왔을 것이다.그간 플리니우스의 제품들은 주로 북셀프에 연결해서 들었으므로, 이런 매칭은 생소하기만 하다. 하지만 약간의 트러블이나 과잉을 너무나 거울처럼 드러내는 모니터 스피커이므로, 그 점에서 본 기의 탄탄한 실력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큰 수확이라 하겠다. 이것저것다 귀찮고, 그냥 인티로 단순하게 가면서 하이엔드를 지향하겠다고 하면, 본 기는 좋은 옵션이 되리라 본다.